2009년 7월 15일 수요일

아내의 비밀재료

 

 

 

벤은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언짢았다. 아내 말타가 늘 사용하는 가스레인지 위에

 

선반이 있는데 그 위에 놓인 조그만 철제통이 문제였다. 아내는 그 철체통엔 손도 대지

 

말라고 수없이 다짐 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다면 벤은 그 통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통에 이토록 신경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통엔 아내가 장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비밀재료"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벤이나 누군가가 통속에 뭐가 들어 있나 보려고

 

집었다가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쏟기라도 하면 끝이라는 것이었다. 그 소중한 비밀 재료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철제통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너무 오래 되어서 붉고 노란 꽃무늬가 거의 다

 

지워지고 없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 통을 집어 들고 뚜껑을 열 때 손가락이 닿았던 자리가

 

까맣게 닳아 있었다. 아내의 손가락만이 아니었다. 장모님과 장모님 어머니의 손가락도 그곳에

 

자국을 남겼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증조,고조할머님도 이 통 속에 비밀 재료를 쓰셨을 것라고

 

아내는 생각했다.

 

벤이 말타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모님은 이 통을 말타에게 주셨다. 그리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으로 통속의 재료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셨다.

 

말타는 장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무슨 요리를 하든 아내는 선반에 놓인 통을 집어서

 

"비밀재료"를 조금만 뿌렸다. 케이크나 파이나 쿠키를 구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팬을

 

오븐에 넣기 전에 통 속의 재료를 조금 뿌리는 것을 벤은 몇번이나 보았다.

 

통속에 든 것은 어떤 요리에겐 정말 효력이 있었다. 벤은 아내 말타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요리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벤 혼자서가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내의 요리 솜씨를 칭찬했다.

 

하지만 어째서 말타는 그 통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것 일까?

 

정말 벤이 통 속에 든 것을 쏟을까봐 걱정이 되어서일까? 그 "비밀재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그것은 무척 고왔기 때문에 아내가 요리 위에 그것을 뿌릴 땐 옆에 서 있어도 어떻게 생긴

 

가루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 "비밀 재료"는 다 없어지면 다시 얻을 수 없으니까

 

아내는 매우 조금씩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내는 그 통 속에 든 재료를 벌써 30년 가까이 사용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번 효력을 발휘해서 아내가 만드는 요리의 냄새만 맡아도 입에 군침이 돌았다.

 

벤은 통속에 든 재료를 꼭 한 번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가 병이 났다. 벤은 말타를 병원에 두고 빈집으로

 

돌아온 벤은 무척 쓸쓸했다. 전에는 아내가 외박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항상 즐겁게 요리를 했으므로

 

벤에게 한 번도 요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까 살펴보러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즉시 선반위에 놓인 철제통을 보았다.

 

두 눈은 자석처럼 그 통에 달라붙었다. 그는 간신히 눈길을 떼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통속에 대체 뭐가 들었을까? 왜 만지기만 해도 안 되는 것일까?

 

"비밀재료"는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나 남았을까? 벤은 다시 눈길을 돌렸다. 부엌식탁위에

 

놓인 케이크 접시에 아내가 만든 맛있는 케이크가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케이크를 한 조각 크게 잘라서 접시에 담고 식탁 의자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한 입도

 

채 안 먹었는데 눈길은 다시 철제통을 향했다. 통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면 나쁠 게 뭐란

 

말인가? 왜 아내는 그 통을 그렇게 비밀스럽게 지키는 것일까?

 

다시 케이크를 한 입 떠먹고 벤은 자신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볼까? 말까? 철제통을

 

바라보며 케이크를 다섯 번 더 떠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벤은 천천히 부엌을 가로질러 가서 조심조심 통을 선반에서 내렸다. 살짝 들여다보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통을 가만히 식탁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너무 긴장해서 통속을 들여다보기도 두려웠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다가 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통 속엔 조그맣게 접은 종이 한 장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커다란 손가락을 억지로 통 속에 집어넣어서 접혀진 종이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잡아 꺼냈다. 그리고 부엌 불 밑에서 살며시 펼쳐 보았다.

 

짤막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필체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장모님의 것이었다.

 

"말타야. 무슨 요리를 하던 사랑을 뿌려 넣는 것을 잊지 말아라."

 

벤은 침을 삼켰다. 종이를 다시 접어서 통 속에 넣고 있던 자리에 올려 놓았다. 다시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아내가 만든 음식들이 왜 그렇게 맛이 좋은지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여자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도서출판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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